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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상 대령, 12·3 내란 사태 막은 비육사 출신 ‘참 군인’의 진면목

by 국방매거진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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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내란 시도가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12·3 내란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계엄군의 핵심 병력인 특전사 헬기의 서울 진입을 세 차례나 거부하며 사태를 지연시킨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육군3사관학교(3사) 출신의 김문상 대령입니다.

그는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작전처장을 역임했으며, 당시 제52사단 210여단장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2025년 1월부로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전출되어 보직 해제 후 교육대기 중입니다.

김문상 대령의 결정적 판단은 내란 시도 저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2월 3일, 비상계엄 하에서 서울 진입을 시도한 특전사 헬기 편대에 대해 김 대령은 "비행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진입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상부에 재차 보고하고 합동참모본부 및 육군본부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은 이후에야 진입을 허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계엄군의 국회 출동이 약 40분간 지연되었고, 그 사이 국회의 대응이 가능해져 내란 음모가 차단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 대령은 “군 명령은 반드시 합법성과 정당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직감적으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단순한 판단이 아닌, 군인으로서의 소신과 헌법에 대한 충성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비육사 삼총사’(김문상, 조성현, 김형기) 중 한 명으로 불리며, 12·3 사태를 막은 일등공신으로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육사 출신이 아닌 3사 출신 장교가 이러한 중대한 판단을 내린 점은 군 내부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유튜브와 언론 보도를 통해 김 대령의 용기 있는 행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참 군인’, ‘헌법 수호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는 보직 해제와 함께 육본 직할부대로 전출되며 일종의 좌천성 인사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그의 복권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김문상 대령의 결단은 단순한 군 내부의 일처리를 넘어,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지켜낸 역사적 선택이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빛난 그의 용기와 책임감은 지금도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굳건히 서기 위해, 김 대령과 같은 군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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